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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연재

고인물의 조건

by 털케이크 2022. 7. 23.

게임은 하나의 쉼터면서, 시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게임에 따라 상당한 인내와 고뇌의 과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보다 시련을 쉽게, 감탄이 날 정도의 세련된 방식으로 통과할 수 있다면, 당신은 아마 그 게임의 ‘고인물’일 것이다.

 

고인물이란 막연히 게임을 잘한다기 보단, 게임에 대한 오랜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게임을 즐기는 방식 자체가 다른 영역에 도달한 자들이라 생각한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던가?

 

본인이 에임이나 순발력이 아무리 좋아도 게임의 규칙을 전부 파악하고 어떻게 따라갈지는 많이 해봐야 알 수 있다. 게임에 대한 센스와 임기응변이 나무라면, 상황을 멀리까지 보고 전략을 세우는 것은 숲을 보는 것에 해당한다.

 

고인물은 그 숲을 너무 자주 봐서 눈감고도 나무 한 개부터 숲 전체를 떠올리는 경지랄까?

 

 

 

 

 

 

 

 

 

 

인터넷 커뮤니티와 멀티플레이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이들의 존재감 역시 뚜렷해졌다.

 

각종 말도 안되는 게임 속 기행과 같은 컨텐츠를 만들거나, 이제 게임에 적응 중인 뉴비가 벽에 부딪혔을 때 효과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다. 잘 피하고 잘 때리라는 실속 없는 충고가 아니라, 타고난 센스가 없어도 통하는 꼼수나 공략법 말이다. 요즘은 아예 코옵으로 직접 도와줄 수 있는 수단도 마련되있다.

 

 

 

 

 

 

 

 

 

 

하지만 이 고인물과 뉴비들의 격차가 커질수록 게임은 황폐해질 우려가 있다.

 

게임이 만들어지며 고인물들의 요구를 반영하면 어려워지는 되는 경향이 있고, 동시에 입문장벽은 높아진다. 그들의 조력도 뉴비가 게임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서나 가능하지, 그 전부터 이런저런 참견을 하면 게임에 흥미가 붙겠는가? 그렇게 뉴비 유입이 끊기면 고인물도 간신히 버티는 황무지나 다름없다.

 

 

 

 

 

 

 

 

 

 

아무리 황무지라도, 대규모 업데이트나 신작 출시 등 필연적으로 다수의 뉴비가 들어오는 시기가 있다. 모처럼의 기회, 개발자는 팬의 눈치는 보면서 유입 또한 잘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하고 싶다. 방금 뉴비와 고인물의 입맛이 서로 다르다 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둘 다 만족시키는 개편 요소가 있다면?

 

반복될 수록 지루해지기만 하고, 복잡할 수록 짜증만 더해지는 부분. 바로 편의성이다. 뉴비가 적응하는 데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이면서도, 고인물들 역시 편의성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하긴 편의성 나빠서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몬스터 헌터 월드는 이 편의성 부분을 대거 개편함으로써 입문자와 팬들을 함께 만족시켰다.

 

우선 심리스 맵을 도입해 구간마다 반복되던 로딩을 없앴고, 스킬 세팅 등 난해한 시스템은 싸그리 갈아 엎었다. 그 와중에 조작 체계와 무기 관리 등 전투와 직접 관련되는 시리즈의 액기스는 거의 원형을 유지. 몬스터 헌터의 변화는 고인물과 뉴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발전의 훌륭한 예시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엘든링은 편의성 부분보다는 다양한 지원 시스템을 추가해서 뉴비의 적응을 유도했다. 보스전에서 코옵 플레이어를 부르는 것처럼 활용할 수 있는 뼛가루가 대표적인 예시.

 

그리고 엘든링에서는 고인물과 관련해 남다른 부분이 있다. 바로 숨겨진 지역의 챌린지 보스인 모그, 말레니아와 마주했을 때 당하는 니힐과 물새난격 패턴이다.

 

 

 

 

 

 

 

 

 

 

각각 블러드본과 세키로를 오마쥬하는 특징이 있어서 팬이라면 남다르게 다가올 패턴일테지만, 동시에 어설픈 고인물의 자존심을 찢어내려는 노골적인 불합리함이 드러나있다.

 

전자는 보조 기술을 봉인한 제약 플레이에서 살인적인 회피난이도를 자랑하고, 후자는 회피 자체가 불가능해 노히트 플레이의 찝찝한 꼬리표가 된다. 마치 구르기만으로 모든 공격을 피해 실력을 뽐내며 취해있던 고인물들에게, 그런 알량한 도취에서 깨어나거나 완벽한 실력을 겸비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이 물새난격과 니힐에 대한 불만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황무지가 되는 원인 중 하나인 ‘고인물들의 자부심’을 조금씩 깎아내는 장치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때 고인물로 인한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의 변화를 거부하는 편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하고 숙련된 부분으로 하여금 뉴비와의 격차가 있다면, 그들 위에 설 수 있게, 마음 놓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즉, 게임이 변하며 익숙한 부분이 없어질수록, 고인물 행세를 할 명분이 없어지니 그게 두려운 것 아닐까? 실력에 프라이드를 가지는 이상, 아예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뉴비와 간극을 늘릴 컨텐츠만을 요구하고 불합리함을 깐깐하게 따지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변화를 다양한 각도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방법을 고민해왔기에 고인물이 된 거라면, 신규 시스템을 거리낌없이 실험해보며 물새난격과 니힐도 새로운 도전으로써 받아들였을 테니 말이다.

 

잘하는 방법을 아는게 아니라, 즐기는 방법에 통달한 게이머야 말로 고인물이라 생각한다. 게임이 점차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해간다 해도, 그게 재미없는 이유를 찾을 게 아니라 재미있는 부분을 보려고 노력해보자. 고인물이기에 누릴 수 있는 재미도 분명 거기에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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