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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게임픽

(스포없음)히키코모리에게 오모리 추천하는 글

by 털케이크 2022. 4. 24.

 

 

인류는 진화 중 도구를 만들고 쓰는 능력을 터득했고 문명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발전은 끝없이 가속됐다. 이 발전의 기준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 따지면 그건 생존의 걱정을 줄이기 위함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의식주 걱정이 대부분 해결된 현대 사회는 발전의 목표지점에 도달한 것 아닐까. 하지만 이 탓에 생존을 위한 경쟁이 아닌 경쟁을 위한 경쟁만이 남게 됐고 여기서 도태된 사람은 죽음이 아닌 무언가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무언가라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몸으로는 편한데 마음으로는 불편한 아이러니한 느낌, 행동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데 의지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 어쨌든 그 사회 바깥과 생존의 안쪽에 끼인 이상 현실 도피라는 이름의 활동만이 유일한 선택권이다.

 

사회부적응자가 되는 계기는 다양하지만 각자 요약하면 타인에 대한 공포로 내몰리는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소통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남는다. 그것을 소셜 미디어나 창작물의 주인공을 통해 해소하면서 익숙해지면 상대적으로 어려운 현실에서의 소통은 더 두려워지고 단절도 더 두터워진다. 현실에 근접해가는 가상매체는 존재를 알고있는 시점부터 끊을 수 없는 족쇄나 마찬가지. 하지만 창작자로부터 소비자에게 향하는 메신저로서의 역할만 본다면, 족쇄가 아닌 열쇠가 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요컨대 히키코모리의 갱생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이 실제 히키코모리가 갱생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 이게 실증되거나 일반화된 방법은 아니지만, 가능성만 보고 창작물을 하나 꼽자면 나는 오모리를 권하고 싶다. 우울증을 다룬 특성 때문에 불쾌한 인식이 많은 게임이지만 우울함에 심취하는 푸념과 망상의 나열이 아닌 해소에 대한 방향성이 확고하고 그 과정이 그럴듯 하다는 점에서 달리 볼 필요가 있다.

 

 

 

몽롱하고 인과가 애매한 실제 꿈의 경험을 쯔꾸루 게임화한 유메닛키, 거기에 구체적인 뼈대를 넣고 다듬은게 오모리다. 꿈이라는 주제에 맞게 파스텔톤 몽환적인 분위기와 소름끼치는 악몽이 양립하는 세계의 탐험을 표방하면서도, 꿈 밖 현실세계 또한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되어 구체적인 기승전결이 있다. 추상적인 표현과 진행도의 애매함 때문에 극단적인 호불호가 갈리는 유메닛키에 비해, 꿈의 구조적 특성은 남기면서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의 구색은 갖춘게 오모리의 차별점이다.

 

 

 

스토리의 뼈대는 주인공의 트라우마다. 현실도피처인 꿈은 형태가 모호할지언정, 악몽이나 환각으로 나타나는 트라우마는 그 원인이 깊고 단단하다. 초반엔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갈등은 어떻게 마무리 될지 궁금해서 게임을 진행하겠지만,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자해를 연상시키는 연출과 진실의 무게감에 맞물려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할 계기를 받는다. 정도가 심한 사람은 극초반의 스케치북이나 꿈에서 깨는 과정만으로도 주인공의 고통에 몰입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몰입한 주인공의 극복을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히키인 플레이어에게 영향이 가지 않을까? 물론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 자체는 터무니 없다. 4년간 칩거하던 히키가 밖으로 나오는 이유나 현실 속 사람들이 마냥 상냥하고 다정할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현실성과는 별개로 연출에 의한 개연성은 충분히 설득력 있으며 이는 작게나마 용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현실과 직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을, 오모리에선 비중있게, 납득가는 내러티브로 제시한다. 그것은 자신(써니)과 이를 끝없이 상처입히고 현실도피를 권하는 자기비난(오모리)에 대한 구분된 인식이다. 이는 지나친 불안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점점 가속하는 악순환의 뿌리 그 자체다. 물론 이를 없애는 것은 힘든 과정이겠지만, 자각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실제로 해보면 다소 늘어지는 진행과 기대보다 적은 공포요소가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무엇으로부터든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용기를 얻고 싶다면 오모리는 그 역할을 다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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