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게이와 구평충의 유대
게임이 다른 매체들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선택의 반영이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낄 지는 자유이지만, 그 무엇을 보여줄지가 선택지로부터 갈라져 나온다.
그렇기에 같은 게임을 플레이 했어도 서로의 경험을 공감하기 힘들 때가 많다.
그 중 처음으로 부딪히는 선택지는 난이도일 것이다. 대놓고 시작부터 이지모드로 할 것인지 물어보는 방식은 당연하고
영리한 게임들은 선택한 무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맞은 난이도를 찾아가게끔 유도한다.
특히 이 때 나눠지는 근거리 무기와 원거리 무기는 서로 같은 게임을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고난의 굴곡이 다르다.
이지 모드보다 하드가 더 어려움은 쉽게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써본 적 없는 무기가 갖는 딜레마를 공감할 수 있는지는 난감한 문제다.
서로 그런 무기를 왜 고르는지 조차 이해 못하는게 대부분이다.
게임이 복잡해질 수록, 자신의 무기를 이해해갈 수록, 마주치는 한계는 저마다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다.
겉으로만 보면 안전거리를 갖는 원거리 무기가 편한게 당연하고, 이런 인식은 갈등을 빚기 쉬운 편견이 된다.
특히 서로의 차이가 클리어율, 딜미터기 등으로 정량화되고 있다면 예민해진 자존심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이 때 흔히 나오는 주장이 밸런스 패치로 서로 공평해지자는 건데, 기여도는 모르겠고 난이도 면에서 공평해진 밸런스 패치는 없던 것 같다.
그런 대립을 볼 때마다 난 록맨x4의 캐릭터 선택지가 떠오른다.
둘의 차이는 씌워진 색깔의 대비만큼 만큼 명확했다.
엑스는 록맨 시리즈 전통대로 원거리에서 록버스터와 차지샷을 꽂아 넣는 스타일이다.
연사는 효율이 안 좋기 때문에 차지샷을 한발씩 신중하게 명중하는 플레이가 중요하다.
특수 무기의 탄약 제한은 한번 더 생각해보고 쓸 여지를 만들고,
엑스 전용 아머 파츠들을 입수하기 위해선 스테이지를 구석구석 탐색하는 꼼꼼함이 있어야한다.
초심자가 신중하게 움직일 수 있게끔 잘 유도하고 있는 셈.
제로는 근접해서 연속공격으로 강력한 대미지를 가하는 스타일이다.
특수무기를 얻는 엑스와 달리 보스 격파 후 대쉬공격, 이단점프 등의 기술을 익히게 되며, 액션에 속도감이 점차 붙는다.
리스크가 크고 파츠도 없는 대신 플레이어의 빠른 숙련을 유도하고 있어, 익숙해지면 엑스보다 빠른 스테이지 주파가 가능하다.
딱 봐도 숙련자를 위해 준비된 캐릭터.
둘의 성격적 결함만 봐도 스타일의 차이가 보인다.
엑스는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끊임없이 고뇌하며 머뭇거리지만, 제로는 망설임 없이 행동하는 탓에 본인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시리즈 내내 제로의 희생으로 엑스가 나아가는 전개가 너무 반복되서 솔직히 지겨울 정도.
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둘이기에, 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등호 한 개를 두고 홀로 모든 변수들과 대치하는 0(제로)
멀리서 미지수만을 바라보며 적어낼 답을 고뇌하는 X(엑스)
서로가 그 곳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이해할 순 없어도,
상대의 바램도 나와 같다는 것만은 알기에 서로 신뢰하는 것 아닐까.
근거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치고 받으며 얻는 스릴.
원거리에서 침착하게 약점을 노려 명중하는 쾌감.
재미의 과정도 다르고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선택지가 공존해서 게임이 재미있을 수 있던 거고,
상대 역시 그러한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 만은 알 수 있으니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진 못해도 존중할 수는 있다.